2022. 7. 25. 23:48ㆍ조선, 개항기, 서울 역사, 지리
개항기 서양인 여행자들의 눈에 비친 서울

1876년 강화도조약을 통해서 우리가 개항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군대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죠. 개항을 처음 맞이한 시점에서 전통 왕조 수도 한양이 어떤 변화를 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당시에 처음 한양에 들어온 서양인들의 눈으로 봤을 때, 문명인의 눈으로 봤을 때 과연 한양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 당시에 한반도는 서구 문명의 입장에서는 극동, Far East라고 불리는 지역에 속해 있었죠. 사실은 우리가 극동이라는 말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지명 자체가 얼마나 유럽 중심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세계관의 산물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기서 극동이라는 말은 사실 서양인들의 눈으로 봤을 때, 즉 유라시아 대륙의 제일 동쪽 극단에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인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것은 다분히 서양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 가장 오지에 해당하는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그 지명 자체가 이미 굉장히 지역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고 또 사실 같은 맥락에서 아시아 혹은 오리엔트라고 하는 말도 서구 사람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시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대륙과 비교해봤을 때 압도적인 많은 인구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죠. 그래서 사실 아시아는 예를 들면 유럽과 비교해봤을 때 하나의 대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다양한 이질적인 문명권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지역이죠.
오리엔탈리즘
동북아, 동남아, 그걸 통칭해서 동아시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이 외에도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 지역이라든지 중앙아시아 지역이라든지 혹은 서남아시아 지역이라든지 굉장히 다양한 문명권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데 이걸 뭉뚱그려서 아시아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 우리가 신대륙 발견 이전에 유럽인들이 유라시아라는 문명권 속에서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를 다 아시아로 묶었다는 걸 알 수 있고 그래서 이런 지명 자체가 사실은 대단히 서구 중심적인 산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죠.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세계관이나 역사관이나 혹은 일반적인 아카데미의 담론 자체들, 그런 개념이나 이론 자체가 대부분 다 근대 서구의 산물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이나 표현이나 세계관 안에 이미 굉장히 서구 중심적인 것이 녹아들어 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그것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는데요. 19세기에 서양인들이 동양이라고 부르는 세계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일반적인 관념인데 이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인들이 비서구 세계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멸시와 차별의 시선이 그 안에 다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가졌던 동양에 대한 지식을 통틀어서 그 당시에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는데요. 오리엔트라는 말이 원래 서양인들이 해가 뜨는 지역을 의미하는 거죠. 그러니까 유럽의 관점에서 봤을 때 동쪽 지역을 다 오리엔트라고 불렀고 그래서 원래는 근동, 그러니까 서구에서 가까운 동쪽 지역, 지금의 서남아시아 내지는 소아시아라고 합니다. 지금의 주로 아랍 내지는 이슬람 문명권 지역들을 통칭하는 것이 오리엔트라는 표현이었는데 이것이 점차 확대되어서 사실은 아시아 전역을 다 통칭하는 것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쓸 수 있게 되었고 그걸 제일 처음 학문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써서 서양인들의 서구 중심적인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를 전개한 사람은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영문학자입니다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 사실은 우리가 근대에 서구에서 형성된 아카데미즘 학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동양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내포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비판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그 당시에 19세기 말, 20세기 초 개항 직후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일본에 의해서 식민화되기 직전까지 소위 개항기 혹은 구한말이라고 부르는 시기에 한반도에 왔던 서양인들이 한반도 혹은 조선 사회를 어떻게 봤는가를 살펴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 남긴 서양인들의 기록들
한국에 대해서 그 당시 서양인들이 남겼던 주요한 글들만을 한번 리스트 업을 해보더라도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성격을 띤 사람들이 쓴 굉장히 다양한 책들이 있습니다. 제일 많은 경우는 선교사들이 가장 많고요. 그다음에 그 외에도 기자들, 특히 당시 한국에서는 청일 전쟁이나 러일 전쟁이 있을 때 굉장히 중요한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런 기사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도 꽤 있었고요. 또 탐험가, 여행가들도 있었고 군인이나 외교관들도 있었고 의사들도 있었고. 의사들 같은 경우는 대부분 선교사를 겸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또 그 외에 무역을 위해서 온 기업가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여러 가지 출신 배경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왔던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관점에서 한국에 대해서 기록을 남겼는데요. 여러 가지 성격의 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가 그 당시 한국의 모습이 어땠는가를 살펴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 내용들을 크게 저는 소재별로 나눠서 살펴보면 자연환경과 물질문명에 대한 서술 그리고 조선 사람들. 조선의 인간 혹은 조선의 주체를 어떤 사람으로 봤는지. 그리고 조선의 주된 관습과 제도를 사람들이 어떻게 봤는지 세 개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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