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9. 11:39ㆍ조선, 개항기, 서울 역사, 지리
중세 서양인들의 조선사회에 대한 평가
그 사람들이 남긴 여행기를 살펴보면 가장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가 영국 왕립 지리학회 회원이자 최초의 여성 회원이었죠. 굉장히 유명한 사람입니다만 여러 차례 극동 지역을 와서 탐사를 했고 주로 오지를 많이 돌아다녔던 사람인데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한국과 이웃 나라 'Korea and Her Neighbours'라는 책을 썼는데요. 이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서울에는 어떤 예술 작품도 없고 고대 유물도 거의 없고 궁중에 있을 만한 광장도 없고 아주 드물게 벌어지는 거둥이라는 걸 제외하면 어떠한 행사도 극장도 없다. 이 거둥이라는 건 국왕이 궁 바깥으로 행차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서울에는 다른 도시들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적인 매력이 결핍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가장 초라한 도시도 갖고 있는 고귀한 종교적 건물이 주는 후광 같은 것도 서울에는 없다. 이 표현이 사실 이 당시의 대다수 서양인들이 서울을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시 말 그대로 조선은 은둔의 왕국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서 조선에 오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조선에 대해서 소개하는 입문서를 보고 조선에 옵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 편견 자체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다 조선을 중국의 오래된 속국으로 간주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형식적인 속국이었는데 어쨌든 그렇게 서술을 하고 있죠. 그리고 조선을 방문할 때 이 사람들이 중국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건축물들을 보고 혹은 일본의 아주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건축물이나 공예 작품들을 보고 들어오게 되면 조선은 상대적으로 그것에 비해서는 그런 문화유산들이 굉장히 빈약한 거죠. 그래서 일단 겉보기에 눈으로는 굉장히 조선의 문명 수준이 낮다고 평가를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것이 서양인들도 사실은 제가 앞서 말씀드렸지만 중세 도시가 초기에 인구가 늘어나고 하게 되면 굉장히 상하수도 시설도 안 되고 해서 지저분하고 이런 상태가 있는데 이게 조금 시기를 거치면서 이 사람들은 금방 문명화가 되는 거죠. 그런데 비해 본다면 한성부의 상황은 굉장히 열악한 원시적인 상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열악하냐 하면 예를 들면 도로 사정이 왕도라고 불리는 길조차도 너무나 열악하다는 거죠. 마차 한 대 지나갈 폭이 안 되고 비가 좀 많이 오거나 하면 길이 다 질퍽질퍽해져서 쓸모가 없어지고 산사태가 나면 아예 도로교통 자체가 마비되고 이런 열악한 도로 사정이라거나 혹은 아주 열악한 위생 상태. 예를 들면 한성부 안만 하더라도 청계천이나 이런 곳이 제가 하수구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이런 데 굉장히 더럽고 악취 나는 각종 쓰레기들로 가득 찬 수채 도랑들이 시내에 온통 가득 차 있고 때가 꼬질꼬질한 반라의 어린이들. 그리고 수채의 걸쭉한 진흙 속에 뒹굴다 나온 개들. 개들이 굉장히 거리에 많이 나돌아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예라든지 그래서 먼지를 뒤집어쓴 개들의 천국인 골목길. 이런 것들이 굉장히 이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고 오히려 흉물스러운 몰골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에 대한 평가
조선 사람들에 대한 평판은 되게 좋은데요. 그러니까 외모에 대해서는 적어도 조선 사람들의 체구나 눈빛이나 인상 이런 것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서 평균적인 사람들로 볼 때는 훨씬 더 낫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훨씬 더 우수한데 영양 상태도 좋은 것 같고 아마 그것은 평균적인 물산의 풍부함이나 이런 게 전근대 시대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나았던 것 같습니다. 영양 상태나 체구나 신장 이런 것이 나았다고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이 평가하는데요. 그런데 그런 겉보기에 비해서는 너무나 조선 사람들은 나태하고 불결하다는 게 아주 일반적이죠. 천성적인 술꾼에 노름꾼이다. 소심하고 게으른 사람들이다, 인성이 나태하고 습관이 불결하다. 그리고 예법이 굉장히 문화적인 관습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더 떨어진다. 이런 이야기까지도 하는데요. 그런 부분들의 상당 부분은 편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아주 오래 있는 사람들보다는 대개 다 주마간산 격으로 잠깐 여행하다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중국이나 일본을 갔다 오면서 그것과 그냥 겉보기로 비교하는 경우가 많고요. 혹은 거기에서 쓴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조선에 대해서 굉장히 폄하하는 소개 글을 보고 그런 걸 간단하게 확인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사회에 대한 인식 변화
이 사람들이 이와 같이 처음에 왔을 때 굉장히 외부자 내지 관광객의 시선으로 잠시 겉보기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비문명적이고 열등하다고 보다가 몇 차례 여기를 와 보거나 여기서 장기간 지내면서 내부자, 생활자의 시선으로 조선 사회를 보게 되면 이것을 문명적인 결여와 열등함이 아니라 단순한 문화적인 차이로 보게 되면서 조선 사회의 여러 가지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한성부에 비교적 오래 있었던 길모어 같은 사람은 조선의 위대한 건축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요. 로웰 같은 사람도 서울의 성곽도시가 굉장히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요. 특히 재미있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비숍 여사 같은 경우에 처음에는 한국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가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굉장히 호의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대단히 잘생기고 명민하고 똑똑한 민족이라는. 길모어 같은 사람도 스위스 못지않게 애국심을 가진 민족이라느니. 중국 사람들에게 굉장히 흔한 아편이나 담배 같은 그런 사회악을 찾아보기 어려운 굉장히 선량한 천성을 지닌 건전한 사람들이라느니. 혹은 같은 로웰 같은 사람은 일본인들은 굉장히 위선적인 데 비해서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순진무구하다고 한다든지 이런 이야기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알렌 같은 사람은 한국에 굉장히 오래 머물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죠. 서양 사람들이 와서 한국이 굉장히 오물과 악취의 나라라고 수치스러운 별명을 붙이는데 사실은 조선의 퇴비 더미의 냄새가 공해 오염돼 있는 시카고 강의 유독성 악취보다 훨씬 나은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또 서양 사람들이 김치 냄새를 못 견뎌하는 건데 이건 한국 사람들이 치즈 냄새를 못 견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굉장히 문화상대주의적인 시선을 보여주기도 하죠. 한국에서 오래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셔우드 홀 같은 사람은 나중에 자기 회고록에서 시계 없이 살았던 한국에서의 태평스러웠던 사람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렇게 회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눈에는 굉장히 비합리적으로 보였던 인간성 그리고 사회의 제도 문명에 대해서도 굉장히 나름대로의 한국 사회에 합리성이 있다는 설명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피스의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평가
그리피스라는 사람은 한국의 여자들은 환락과 노동의 도구일 뿐 남자의 반려라거나 동등한 존재로서의 의미도 없고 이름도 없다. 사실 빨래의 노예라는 표현은 비숍도 쓰고 있는데요. 우리가 백의민족이고 해서 빨래를 여성들이 무지하게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냇가나 우물가에서 빨래하고 저녁에 그걸 갖고 가서 다듬이질하는 여성의 모습들은 굉장히 흔하게 눈에 띄는 모습이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한국의 여성들은 정말로 다른 어떤 여성들보다도 철저하게 노예적이고 예속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맥락에서 한국의 축첩 제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남성우월주의적인 제도라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는 경우도 많죠. 그렇지만 한국의 그런 제도적인 내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어떤 누구보다도 한국의 부부관계에서 정실부인이라는 것이 갖는 지위는 서양의 낭만적인 결혼 제도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여성의 신분적인 안정을 보장하는 제도다. 그래서 예를 들면 축첩이라는 것이 관습적으로 인정되고는 있지만 이게 중국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법적으로 한국인들은 아주 엄격한 일부일처 주의자라고 한국 사회 관습을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비숍 여사가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한국 여성들에게 여성에 대해서 서양식의 자유로운 남녀 간의 동등한 결혼 생활과 자유로운 이혼. 이런 결혼 풍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 여자에게 물어봤더니 어떤 한국의 지적인 여성이 굉장히 오히려 서양 여성이야말로 가엾다. 내가 생각할 때 서양의 남편들이 서양 여자들을 너무 구박한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니까요.
비숍의 조선시대에 대한 평가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비숍이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죠. 한국의 전통 예법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 빼고는 조롱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단조로움과 점잖음, 상냥함과 정중함, 굉장히 호감이 가는 예법이 있었다는 거고요. 예를 들면 한국에 높은 빌딩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문명 수준이 낮다고 많은 사람이 비판을 하는데 이것도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소박함의 가치 때문에 빌딩을 높게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궁궐보다 높아서는 안 되는 예법이 있는 거고 그런 거 때문인 것이지 이게 한국이 건축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더 격정적인 것은 이런 부분인데요.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게으르고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발전이 안 됐느냐는 것을 나태한 민족성에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데 예를 들면 비숍이나 길모어 같은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양반들이 국가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설사 자기가 굶어 죽고 구걸을 할지라도 절대로 육체노동을 안 한다는 거죠.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의 굉장히 잘못된 문화적인 관습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그러나 그것을 고친다면 이 민족의 장래는 굉장히 밝을 수 있다. 이런 비숍 같은 사람이 만주를 가보고 동북삼성 연변 지역의 조선인들의 개척촌을 가보고는 조선 사람들의 나태함이라는 것이 민족성이 아니구나. 그 지역에서 자기 밭을 스스로 일구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한다는 거죠. 그런 걸 보면서 이것이 제도와 관행 때문에 조선의 삼정의 문란, 탐관오리들의 전횡, 이런 거로 인해서 조선 후기 사람들이 근로의욕을 잃어버려서 사회규범이 다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이게 민족성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부분들을 보면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하나의 다른 문화 세계와 문명에 대해서 다르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개항 직후에 한국에 들어왔던 서양인들의 시선을 통해서 그 당시에 굉장히 인종차별주의적인 편견이 지배했던 당시 사람들의 눈에 조선의 모습이 첫눈에 겉보기에 어떻게 보였고 혹은 나중에 그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면서 어떻게 다르게 그것을 문화적인 차이로 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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