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쓰레기 하치장 - 난지도의 변화와 역사

2022. 8. 3. 16:03조선, 개항기, 서울 역사, 지리

서울의 쓰레기 하치장 - 난지도의 변화와 역사

서울의 쓰레기 하치장 - 난지도의 변화와 역사
서울의 쓰레기 하치장 - 난지도의 변화와 역사

여러 곳에 광화문 밖이나 독립문 밖이나 북부의 북부 옥동 지역에 공터나 이런 데. 아마 우리도 산업화 초기에 여러 군데에 이런 쓰레기들이 방치돼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런 현상들이 바로 30년대 후반 식민지 시기 말기부터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이 60년대 이후 점점 커지니까요. 그리고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아까 해방 직후에 한 100만 명이었던 인구가 60년대 넘어가게 되면 400만 이렇게 되니까요. 그러면서 쓰레기가 서울 도심부에 더 이상 쓰레기장으로는 유지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서울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한곳에 모아서 처리하는 쓰레기 매립장이 지정이 되는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지금 구의동, 테크노마트가 있는 자리. 그리고 장안동, 상계동, 방배동, 압구정동. 아까 일제 말기 때 4대 문 바깥 주변 지역에 있었다면 이제 훨씬 더 광역으로 이게 벌어지게 되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데요. 그렇게 있다가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이런 유해시설들이 근처에 있는 것에 대해서 자꾸 여러 가지 민원이 있으니까 이걸 정부에서 일괄해서 한 군데에 모아서 처리하자고 해서 쓰레기 하치장으로 결정한 곳이 난지도이죠. 난지도는 이름 그 자체 그대로 사실은 굉장히 아름다운 섬입니다.

쓰레기 매립장이 된 난지도

난초가 굉장히 많은 자생하고 있었던 섬인데요. 그런데 78년부터 서울에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돼서 이게 92년도에 포화돼서 그 기능을 정지할 때까지 15년간 총 9200만 톤의 쓰레기가 적재되었다고 하죠. 난지도가 원래 그렇고 높은 섬이 아닌데 높이가 한 100m 이상 되면 두 개의 거대한 산으로 쓰레기 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게 쓰레기 적재량이 하루에 트럭 3000대 분량으로 버려졌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이집트에 있는 기자 피라미드의 31배 부피까지 이르렀다고 하죠. 그래서 80년대 말 이 당시에 이르게 되면 한국이 세계에서 1위의 쓰레기 배출량이 제일 많은 나라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한국에서 아직 쓰레기 소각처리가 일반적이지 않고 대부분 직접 매립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게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왔던 거고요. 최근에는 우리가 아시다시피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쓰레기 양이 굉장히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당시에 훨씬 더 쓰레기가 많이 나왔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사실은 이 난지도는 서울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인천, 부평, 광명, 안양, 구리 이런 근교 이상 도시의 쓰레기도 그게 다 매립되었거든요.

난지도 이외 쓰레기 매립장

물론 그 일부는 시흥시나 광명시는 당시 평촌에 있던 매립지, 또 안산시하매립지, 성남시는 분당구에 그 당시 있었던 자체 매립지를 쓰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난지도에 이 인근 지역 쓰레기가 다 모이다 보니까 15년 만에 포화상태가 되었고 그래서 이걸 경기도 김포 쪽으로 90년대 초에 옮기게 되는 것이죠. 더 이상 서울시 내부에는 쓰레기 매립장을 둘 수 없어서 외부 지역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서울특별시, 인천직할시, 경기도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광역쓰레기매립장으로 수도권 매립지를 마련하게 되는데요. 그게 인천광역시 서구 오류동, 왕길동, 백석동, 그 일대, 그리고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이 일대에 걸친 광역 폐기물 처리 시설로 옮겨가게 되면서 난지도가 쓰레기장으로써의 역할을 그만두게 되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 지역도 사실 쓰레기가 쓰레기장으로 옮길 단계의 규모로 계속 양산되면 머지않아 이 쓰레기장이 포화돼서 다시 또 다른 곳을 구해야 되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비교적 쓰레기 분리수거를 통해서 쓰레기 양이 줄어들고 있어서 예상했던 것보다는 기능을 조금 더 가져갈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쓰레기장 이전 후 난지도의 모습

마지막으로 쓰레기장이 그래서 이전한 이후의 난지도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죠. 흥미로운 것은 한국 서울이 세계도시 국제도시로 된 두 개의 결정적인 스포츠 메카 이벤트로 들 수 있는 게 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강남 잠실 일대를 비롯한 한강 일대 서울의 경관이 정비되었다면,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상암동 일대에 월드컵 경기장을 신축하면서 일대에 완전히 신시가지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거기에서 그 지역의 친환경 콘셉트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월드컵공원이라는 것이 조성되었죠. 그래서 여기에 평화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이런 다섯 가지 테마공원이 이때 조성되는데, 바로 여기에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쓰레기 매집 부지였던 난지도에 들어선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입니다. 이 두 개의 거대한 산이 녹색공간으로 바뀌었고 그 산은 아시다시피 쓰레기로 만들어진 산입니다. 여전히 거기에서는 여러 가지 메탄가스나 악취도 나오고, 거꾸로 그것을 열 에너지원으로 활용해서 월드컵 경기장 시설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한데요. 그래서 이런 변화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서울이 초거대 도시화가 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까 4단계의 서울의 변화 말씀드렸는데 1902년부터 1950년대까지는 4대문 주변 지역에 서울의 주된 쓰레기장이 있었다면 이제 60년대, 70년대를 거치면서는 구의동, 장안동, 상계동, 방배동, 압구정동. 이런 지역들로 범위가 넓어졌고, 3단계 70년대, 80년대에는 난지도에 그 기능이 집중되었다가 90년대 이후에 오게 되면 서울시 바깥으로 김포와 인천에 수도권 매립지가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서울의 쓰레기 처리가 바뀌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고요. 그래서 이러한 서울의 팽창 과정에서의 서울의 기능적인 역할이, 쓰레기 처리의 역할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바뀌어 가는가를 살펴봤는데 결국 최종적으로는 서울시가 단순히 서울 안에서 모든 게 해결이 안 되고 수도권과의 유기적인 연관성이, 기능적 의존성이 더 커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