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6. 06:39ㆍ조선, 개항기, 서울 역사, 지리
시대별 서울의 모습(삼국시대~조선)
지금 서울의 2000년사에서 주로 강남 지역에서 새롭게 발굴된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의 주된 내용은 무엇인지 한번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선사시대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이 한강 남쪽에 대규모로 발견이 되었죠. 그것이 지금 암사동 신석기 시대 마을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역삼동, 명일동, 가락동 일대에도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집터 유적들이 꽤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대규모 자료들이 출토된 것은 역사시대 유적이고, 그것은 아무래도 고대국가 한성 백제 시대에 건국된 백제의 초기 유적들이 발굴이 된 것이죠.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졸본 부여를 떠나서 남하했던 온조가 기원전 18년경에 한강 남쪽에 위례성에서 백제를 세웠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남 위례성이라는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이 지명이 어디일까에 대해서 그동안은 이견이 분분했는데요.
삼국시대의 서울
요즘은 이게 송파구에 남아있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제가 4세기 중엽 경에 이르면 계속 발전해서 근초고왕 때에는 평양성을 공격할 정도로까지 강성해졌지만, 5세기 후반에 이르면 475년에 고구려에서 한 3만 명의 군대가 공격을 해서 왕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과 그 가족들이 다 잡혀서 죽임을 당하죠. 그러면서 백제가 웅진(공주)으로 천도를 해서 국가를 재건하게 되고, 나중에는 다시 또 사비(부여)로까지 천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제는 우리가 흔히 한성 백제, 웅진 백제, 사비 백제, 이렇게 3개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한성 백제, 초창기 백제 전성기의 유적들이 지금의 송파구 일대에 남아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서울을 비롯한 한강유역은 삼국시대에는 삼국 중에 이 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이 사실은 삼한을 지배한다고 해서 가장 전성기에는 어느 나라나 이 지역을 지배했죠.
고구려 시대의 서울
고구려도 한강 북쪽에 아차산이나 용마산 일대 능선에 축조한 보루의 유적들이 남아 있죠. 이때 고구려가 서울 지역을 남평양이라고 불렀는데요. 그만큼 전략적인 교두보로, 남하의 교두보로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 수 있고요. 그리고 나중에 백제하고 신라가 연합해서 551년에는 고구려군을 서울 일대에서 몰아냅니다. 그러면서 한강 북쪽은 신라가 차지하고 한강 남쪽은 백제가 차지하게 되는데요. 그때 좀 이따가 나중에 553년에 이르면 신라가 백제까지 몰아내고 한강 유역을 다 차지하면서 신주, 새로운 주 지역을 설치하게 되고, 나아가서 557년에 북한산주라는 것을 설치하게 되거든요. 지금 북한산 비봉에 진흥왕순수비가 있는데, 이 당시에 진흥왕이 세웠다고 알려져 있죠. 그리고 삼국이 통일되고 나서 통일신라가 685년에 9주 5소경 제도를 완성하면서 서울 지역에 한산주라는 것을 설치하는데요.
통일신라 시대의 서울
이후에 8세기에 이르면 한주라는 명칭을 쓰게 되죠. 주로 이 당시에 보면 통일신라에서 당나라로 가는 사신들이 한강유역의 교통로를 많이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9세기 말, 10세기 초에 이르러서 통일신라가 혼란기에 접어들면 한강 유역은 일찌감치 궁예나 왕건, 고려의 영역에 속하게 되죠. 그리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성종이 10개 도, 580여 개의 주·군으로 편성하는데요. 그때 서울 지역은 관내도가 되고, 나중에 양주와 광주, 두 지역으로 나눠져서 두 지역을 중심으로 한 양광도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요. 그러다가 고려 문종 때 남경이 설치되고, 숙종 때는 지금의 남경에 궁궐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의 서울
지금 궁궐 유적 중에 일부는 발굴이 된 바 있는데, 사실 고려시대 남경의 유적은 지금 조선시대 사대문 안 지역과 겹치고 그것보다 규모가 좀 더 컸다는 주장도 있죠. 그래서 사실 제대로 된 발굴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성 백제의 유적보다 고려시대 남경의 유적이 서울에서는 제대로 고고학적인 발굴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다가 1308년 원나라 간섭기에 남경을 한양부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요. 고려 말기에 이르게 되면 서해안 일대에 왜구가 극성을 부리면서 공민왕, 공양왕 때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려는 시도도 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곧바로 1392년 되면 고려왕조가 멸망하니까요. 그리고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태조 이성계에 의해 조선왕조의 도읍이 한성부로 옮겨지게 되는 이런 역사로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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