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2022. 7. 26. 14:03조선, 개항기, 서울 역사, 지리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기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기억과 역사를 우리가 구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역사라는 것은 그 자체로 사실 지나간 fact, 사실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역사는 지나간 무수히 많은 사건 중에서 어떤 것을 역사 서술로 담아냈을 때 또 역사가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런 것을 담아내는 것은 결국 그중에서 어떤 것을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가의 문제가 그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 성원으로 묶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결국 기억을 통해서만 사람들에게 내면화되고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볼 수가 있겠죠. 다시 말하자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개인의 정체성 혹은 집단의 정체성, identity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고요.

역사의 의미

역사라는 것은 굉장히 개별화돼있는 기억들을, 개인들의 체험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공신력 있는 의미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그래서 개별화된 일상의 시간을 초월하는 어떤 시간성을 의미하면서 이것이 말하자면 일련의 기념비적 사건이나 영웅적 인물들이 쉴 새 없이 교체되면서 민족이나 계급의 형성, 발전 이런 큰 집단적인 시간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것이 역사 서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면서 개별화된 개인이나 혹은 작은 집단들은 이런 큰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의 작은 체험들을 종속시킴으로써, 거기에 한 부분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어떻게 보면 큰 민족 집단 혹은 계급 집단들과 같은 집단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는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역사라는 것은 개인의 기억을 담아내는 큰 그릇이라고 할 수 있고요. 기억이라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의 문제죠. 그래서 역사라는 것은 그 역사를 공유하는 큰 집단의 정체성으로 영위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역사학이라는 것, 기억이라는 것은 다 시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3개로 구성되어 있죠.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게 우리는 언제나 현재라는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이건 좀 철학적인 논의가 될 텐데요. 아이러니한 것은 항상 우리가 체험하고 존재하는 시간은 현재밖에 없죠.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고 미래는 항상 앞에 다가올 일이지만 절대로 미리 체험할 수 없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대죠. 그래서 우리가 항상 체험하고 있는 시간대, 그러니까 실존하는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밖에 없는데요. 현재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찰나죠. 찰나의 연속으로 우리는 하나의 시간 체험을 평생에 걸쳐서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대가 과거나 미래가 없이 현재만 존재한다고 하면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현재 시간의 의미

우리의 현재 시간이 의미를 갖는 것은 과거에 내가 무언가를 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속에서 현재가 의미를 갖는 것이고요.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내가 현재의 나의 시간대, 나의 행위가 미래의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거나 미래에 무언가 다가올 것을 예정하고 있다는 것 속에서만 또 의미는 갖는 것이죠. 그런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현재라는 시간은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현재라는 시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철학적인 존재에 대한 논의인데, 현상학적인 방법으로 철학을 했던 에드문트 후설이라는 철학자가 이 현상학적 시간론으로 사실 이런 논의를 풀었는데요. 거기에서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되당김과 미리 당김으로 인간의 삶의 의미가 구성된다. ” 이런 얘기를 합니다. 되당김은 결국 과거로 시간을 지향해서 보는 것이고, retention이라는 것인데요. 그리고 미리 당김이라는 것은 미래지향입니다. 미래에 다가올 시간을 얘기하고 예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큰 흐름 속에서 자신의 삶

그 두 가지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고 현재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죠.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2000년에 만든 스릴러 영화 중에 「메멘토」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을 하죠. 그 날 한 행동을 그다음 날 기억을 전혀 못합니다. 그래서 문신으로 기억을 남기죠. 하여튼 그런 스토리입니다. 이게 말하자면 어제의 기억이 없는 사람 그리고 내일 또 기억을 상실할 사람이 자신의 존재,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건가의 철학적인 고민을 영화로 담아낸 거라고 볼 수 있고요. 또 비슷한 맥락에서 일종의 인공지능 사이보그를 다룬 영화들, 유명한 일본의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The Ghost in the Shell)」이라는 영화 혹은 그것을 모티브로 해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에 보면 도대체 사이보그가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얘기를 할 때 결국 특정 인간의 기억을 주입함으로써 사이보그가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하게 만들죠. 거기서도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의 주체성 혹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의 결정적인 것은 기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연관시키자면, 결국 역사라는 큰 흐름 속에서 자신의 삶에 기억의 시간대를 집어넣어서 재구성함으로써 인간은 집단적 정체성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