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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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건축물들의 청산하는 서울 모습
일제강점기의 건축물들의 청산하는 서울 모습 우리는 일제시기라는 역사, 적어도 1910년부터 45년 혹은 좀 더 길게 잡으면 1905년부터 혹은 개항기부터의 역사로 잡아볼 수 있는 일본 혹은 일본인들이 서울에 들어와서 남긴 흔적들에 대해서 우리는 가급적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편리한 방식으로 사실 기억을 남기고 있습니다. 예컨대, 일제시기에 일본이 조선왕조의 수도 한성부를 일제의 식민지 조선의 중심 도시인, 권력 거점지인, 즉 경성부로 바꾸면서 아주 상징적인 새로운 형태의 도시 변모를 하죠. 왕조 수도로 꾸며져 있던 도시 공간을 식민지 수도 도시 공간으로 정말 재편하는 작업을 하는데요. 거기에서 상징적인 건물로 세워졌던 것이 경복궁에 세워졌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있고, 또 남산 위에 있..
2022.07.29 -
수도권의 모습에 영향을 준 요소들
수도권의 모습에 영향을 준 요소들 서울의 도시화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앞서 철도를 통해서 근대 초기에 서울이 팽창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역시 경인선 철도의 역할이 컸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서울시를 둘러봐도 서울시 주변이 다른 지역들은 다 기본적으로 서울시 외곽에 그린벨트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것은 서울이 상당 부분 풍수적인 지리 조건들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자연환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요. 북한산 같이 이렇게 국립공원으로 조성될 정도의 큰 산이 1000만 도시 주변에 있는 이런 사례도 사실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굉장히 드문 사례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그 덕분에 서울이 여러 가지 난 개발에도 불구하고 공원의 녹지가 도시 내부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쾌적한 삶의 환경을 유지할 수..
2022.07.26 -
시대별 서울의 모습(삼국시대~조선)
시대별 서울의 모습(삼국시대~조선) 지금 서울의 2000년사에서 주로 강남 지역에서 새롭게 발굴된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의 주된 내용은 무엇인지 한번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선사시대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이 한강 남쪽에 대규모로 발견이 되었죠. 그것이 지금 암사동 신석기 시대 마을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역삼동, 명일동, 가락동 일대에도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집터 유적들이 꽤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대규모 자료들이 출토된 것은 역사시대 유적이고, 그것은 아무래도 고대국가 한성 백제 시대에 건국된 백제의 초기 유적들이 발굴이 된 것이죠.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졸본 부여를 떠나서 남하했던 온조가 기원전 18년경에 한강 남쪽에 위례성에서 백제를 세웠다고 하고 있습니..
2022.07.26 -
개항기 서양인 여행자들의 눈에 비친 서울
개항기 서양인 여행자들의 눈에 비친 서울 1876년 강화도조약을 통해서 우리가 개항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군대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죠. 개항을 처음 맞이한 시점에서 전통 왕조 수도 한양이 어떤 변화를 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당시에 처음 한양에 들어온 서양인들의 눈으로 봤을 때, 문명인의 눈으로 봤을 때 과연 한양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 당시에 한반도는 서구 문명의 입장에서는 극동, Far East라고 불리는 지역에 속해 있었죠. 사실은 우리가 극동이라는 말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지명 자체가 얼마나 유럽 중심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세계관의 산물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기서 극동이라는 말은 사실 서양인들의 눈으로 봤..
2022.07.25 -
개항 이후에 서울의 변화된 모습
개항 이후에 서울의 변화된 모습 개항 이후에 서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을 보려면 우선 그 당시 조선 후기 혹은 조선 말기 서울의 상황이 어땠는가에 대해서 살펴봐야 되는데요. 한성부 지역은 조선 초기 유교적 신분제에 따라서 일정한 거주지의 사회적 분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게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전통 시대의 엄격한 신분제에 따른 주거 분리 현상은 아니고요. 그런 제도적인 강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생활·습속 상의 제한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거주지가 일정하게 분화되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의 거주지 분화 주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 지역이 가장 노른자위 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왕족을 제외한 사람들이 살기에 제일 좋은 땅이었죠. 여기를 조선 후기에 주로 노론 집권층들이 여..
2022.07.25